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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걸린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 난 어쩌다 번아웃이 왔을까? 맡았던 클라이언트 탐구..

by 위로♡ 2024.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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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회복지사로 처음 일하기 시작한 때, 정확히 말하면, 사회복지사를 따고자 마음먹고 복지분야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사회복지사가 아닌 채 복지분야에서 먼저 일을 시작했었다.
시기가 좋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일도 해야했고, 자격증도 따야했던 상황이던 나는 그래서 때마침 나라에서 처음 시작되었던 사업인 독거노인 생활지원사로 지원해 근무를 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상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복지분야에서 노인생활지원사로서 처음 담당했던 어르신들은 이미 생을 많이 겪어오셨고 나보다 경험들이 많으신 분들이었기에 나는 사무적이거나 행정적인 태도로 그분들을 대할 수 없었다. 일상생활지원과 안전안부를 중심으로 대상자들의 노년기가 좀더 관계적으로 풍부할 수 있는 정서적 지지와 때로는 후원품을 전달하거나, 일상의 단조로움을 프로그램등으로 연계시켜 삶이 조금 다채로울 수 있게 역할을 하는 지지적 측면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난 사무적이거나 행정적 틀에 맞는 업무가 아닌 그야말로 사람 대 사람의 관계적 측면에 맞춰 일을 했다. 그것까지면 괜찮았고 나름 좋은 관계들로 지냈었는데.. 그런데 나는 여기서 실수를 하나한다. 노년도 생의 연장선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대해야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늘 죽음, 마지막이란 단어를 새겼던 실수를 한 것 같다. 다 끝이고 마지막인 것 같은.... 그땐 별생각 없었지.. 내가 늘 마주하고 있던 단어가 얼마나 어려운? 단어인지를... 단어의 초점을 바꿨어야 했었다. 노년, 그래도 행복한 삶으로... 허긴 일하면서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이 심심찮게 계시니 그런 생각을 아무렇지하게 되었지만.. 죽음, 마지막.. 이런 단어들이 얼마나 슬픈가.... 그렇게 일과 학업을 병행하던 나는 사회복지사 2급을 드디어 취득했다. 

독거노인 생활지원사는 현장방문 중심이기 때문에 몸은 좀 힘들었지만, 사람을 돌보고 살피는 것은 내 적성에 어느정도 맞았는지...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퇴사를 하고 전문적인 사회복지사로서 다시 일하기 위해 노숙인 자활, 생활시설로 지원해서 일을 시작했다.

1년이 넘게 일을 해왔었는데, 번아웃이 왔다. 노숙인.... 타이틀만 노숙인이지 나랑 똑같은 인간이다. 다만 이들은 자라온 환경이나 사회적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 지금의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노숙인들을 위한 단체 워크숍에 갔을 때 이들을 돕는 의사선생님은 '나도 발 한쪽만 삐끗하면 같은 처지이다. 삶이란 누구나 힘들다.' 라고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나도 같은 생각으로 시설에서 그들이 환경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제공하는 시설을 잘 이용하고 그들 나름의 생을 독립적으로 이끌어가기를 바라며 일했었다.
그런데 힘들었던 점은... 그들은 환경적으로 너무 어렵고, 지지체계도 너무 빈약해서 스스로를 방치?한채 지낸지 오래된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스며듦이 오래되어 되돌리기에는 너무 어렵고 힘들다. 환경적인 부분을 조금 끌어올리고, 그들에게 가정과 같은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더라도 독립적으로 다시 사회에 나갈 스스로를 추스리기는 많이 어렵고 힘들다. 본인 스스로도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고 어려울까.. 난 거기서 시집도 안간 내가 그들의 엄마로.... 어쩌면 결혼부터 하는게 맞는가....ㅋ

각종 요구와 고성이 난무하는 싸움의 현장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던 나는... 그들에게 쏟아부은 마음으로 난 날 놓고 있었다! 나를 돌봐야 주위도 보이는 것이다. 이부분이 가장 아쉽다. 여기서도 빠져있던 내행복.. 퇴근하면 손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시체처럼 누워있었고, 그들의 처지와 그들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점점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던 내가 지금에서는 왜 그렇게 뚜렷하게 보이는 것인지... 거기에 업무가 과중되는 기간이 맞물리니 이미 우울이라는 정신증이 신체적으로도 오고있는 상황에서 번아웃으로 귀결될 수 밖에.. 내 일상도 잘 즐기고 나부터 잘 돌보고 그랬어야, 좀 더 그들을 위한 에너지를 씀에 방전이 안될 수 있었을 것을 지금은 확실히 보인다. 그럼에도 일하는 시간이 많고(대상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마주하는 시간이 많았던 생활시설의 특성) 주야근무였기에 나는 그렇게 두번째 대상자들과 이별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실업급여를 받기위해 계약직으로 잠시 일했다. 대상자들을 위해 일하지만 그럼에도 직접 대면이 많지 않은, 행정중심의 일을 앞으로도 선택할 것 같다. 우울과 싸워가며 신없이 일했고 공부했다. 우울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몰입이었고, 그래야 우울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 우울이라는 정신증때문에 비관적인 심정이 날 온전히 채우고 있었으므로 몰입도 어려웠다. 글도 잘 읽히지 않았지만, 몰입할 것이 이것밖에 없던 나는 그래도 내 남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 사회복지사 1급을 합격했고, 미치지않은 것이 다행이었다는 회상도 된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동안 상태는 점차 호전되어갔지만 업무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로 실업급여 때문에 입사해 일한 것은 조금 죄송스럽긴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면서 나도 돌봤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론 환경을 바꾸더라도 아마 직접 대면보단 지금의 경험을 살려 일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 같긴하다.

나의 생은 어린시절과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를 알아가기 위해 방황했던 시간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사회복지사라는 명확한 타이틀 내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일잘하고 치우치지 않는 나로써 살아가 보고자 한다. 사실 우울증에 걸리고 불안장애가 생겨 퇴사한 후 계약직으로 잠시 머물 곳을 찾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야 했기에, 주야일을 하며 사회복지사 1급에 매달렸다. 우울증이 심했던지 인지능력도 떨어져 책 내용도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던 것을 정말 온 힘을 다해 책으로 파고들고자 노력했었다. 합격을 했으니 망정이지 떨어졌으면 다시 우울증의 나락일지도 모를일이다. 정말 미칠것 같았는데 이거라도 이뤄내서 다행이다ㅜㅜ 우울증도 불안도 조금씩 가셔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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